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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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조교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의 식민치하의 민족적 비애와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을 기조로 하여 쓴 시의 제목으로 민족주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상화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는 일제 당국이 이 시를 게재한 개벽지를 폐간시키게 하였다. 그 만큼 이 시는 우리 주권과 자유를 박탈한 일제를 향해 뚜렷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악랄한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박탈하는 주체가 이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것을 5살짜리 꼬마아이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무수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그때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 지금 이 시점 아무리 사회적 문제가 많다 할지라도 일제 강점기와 현재를 논한다는 것은 절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칫 터무니없는 억지 비교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일제강점기까지 거론하면서까지 이야기를 펼치고자 함은 2주전에 마음먹게 되었다. 그날은 평소 항상 학과에서 막내인 나를 응원해주고 챙겨주는 교수님들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 날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하루에도 몇 번을 뵈었을 분들이지만, 이번학기 들어 처음하는 저녁식사였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역시나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연식이 다를 뿐 각자의 인생이란 도로에서 나름의 학창시절을 보냈었고 이제는 학교에서 교수로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의 캠퍼스 내 학생들의 고충과 교수로서의 고충까지 나름의 에피소드들 안에서 걱정을 하기도 웃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리에 계신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에피소드는 속칭 ‘컬쳐쇼크’로 다가왔다. 20학번, 21학번인 현재1, 2학년 사이에서 동갑내기 동기임에도 ‘님’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선뜻 믿기지 않아 “정말요?” 라고 질문을 한 필자에게 돌아온 이야기는 이는 단순히 그 한 학생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내 귀를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의 대화에서 ‘이러한 현상이 소수일 수 있고 현재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 즉, 동기들끼리 얼굴을 보기 힘들고 모두 다 함께 모여서 만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의견과 함께 ‘이전의 상황에서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분명히 다르기에 과연 이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에서 더 나아가 혹여나 대학동기끼리도 호칭을 붙여 부르게 되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을 아닐지 괜시리 걱정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MT는 사라질 것인가?’ ‘학술제, 동아리, 개강총회 등 학생자치 기구행사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는 어떤 현상들이 캠퍼스 내에서 펼쳐질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 2시간 남짓한 저녁식사의 대화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필자 또한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면 언택트 시대라 그런지 3,4학년들 친구들도 내게 전화보다는 문자를 보내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고 말하자 “그건 아마도 김교수가 외모도 그렇고 너무 무서워서 그런거 아닐까?” 라고 화답하신 교수님의 유머에 우리 모두는 다함께 즐겁게 웃으며 마지막 잔을 기울였다.
벌써 1년...유명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우리 모두 코로나19의 일상에서 어느덧 2년차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로인해 사적 모임에 대한 제한, 화상회의, 배달음식, 온라인강의 등은 정말 일상이 되어버렸고 내수경기침체, 우울감 증가, 1회용품 사용증가로 인한 환경오염, 정치적 대립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하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언제쯤 종료될지 걱정하고 염원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것이고 대다수의 캠퍼스의 청춘들 역시도 빨리 젊음의 무대에서 주연 배우로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우리 모두 끝이 보이지 않은 이곳에서 함께 벗어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라며, 지난 저녁식사 때 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일방적인 문자를 받게 되는 것이 언택트의 시대라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무서운 얼굴을 가져서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일제의 식민치하의 민족적 비애와 일제에 항거하는 저항의식을 기조로 하여 쓴 시의 제목으로 민족주의 시인으로 알려진 이상화 시인의 작품이다. 이 시는 일제 당국이 이 시를 게재한 개벽지를 폐간시키게 하였다. 그 만큼 이 시는 우리 주권과 자유를 박탈한 일제를 향해 뚜렷한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악랄한 일제의 강점기를 지나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주권과 자유를 박탈하는 주체가 이제는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것을 5살짜리 꼬마아이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물론 무수한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고 있는 일제강점기의 그때 그 시절을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 지금 이 시점 아무리 사회적 문제가 많다 할지라도 일제 강점기와 현재를 논한다는 것은 절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자칫 터무니없는 억지 비교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일제강점기까지 거론하면서까지 이야기를 펼치고자 함은 2주전에 마음먹게 되었다. 그날은 평소 항상 학과에서 막내인 나를 응원해주고 챙겨주는 교수님들과 함께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게 된 날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하루에도 몇 번을 뵈었을 분들이지만, 이번학기 들어 처음하는 저녁식사였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역시나 대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였다.
자동차로 비유한다면 연식이 다를 뿐 각자의 인생이란 도로에서 나름의 학창시절을 보냈었고 이제는 학교에서 교수로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일을 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의 캠퍼스 내 학생들의 고충과 교수로서의 고충까지 나름의 에피소드들 안에서 걱정을 하기도 웃기도 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자리에 계신 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에피소드는 속칭 ‘컬쳐쇼크’로 다가왔다. 20학번, 21학번인 현재1, 2학년 사이에서 동갑내기 동기임에도 ‘님’자를 붙여서 호칭하는 것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선뜻 믿기지 않아 “정말요?” 라고 질문을 한 필자에게 돌아온 이야기는 이는 단순히 그 한 학생의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정말이지 내 귀를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의 대화에서 ‘이러한 현상이 소수일 수 있고 현재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발생한 것. 즉, 동기들끼리 얼굴을 보기 힘들고 모두 다 함께 모여서 만나는 것이 어려운 현실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의견과 함께 ‘이전의 상황에서 비교해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분명히 다르기에 과연 이것이 맞는가’에 대한 의구심에서 더 나아가 혹여나 대학동기끼리도 호칭을 붙여 부르게 되는 것이 문화로 자리 잡는 것을 아닐지 괜시리 걱정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밖에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과 MT는 사라질 것인가?’ ‘학술제, 동아리, 개강총회 등 학생자치 기구행사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은 아닌지’ 앞으로는 어떤 현상들이 캠퍼스 내에서 펼쳐질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 2시간 남짓한 저녁식사의 대화는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필자 또한 “아 그러고 보니 생각해 보면 언택트 시대라 그런지 3,4학년들 친구들도 내게 전화보다는 문자를 보내서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주를 이룬다”고 말하자 “그건 아마도 김교수가 외모도 그렇고 너무 무서워서 그런거 아닐까?” 라고 화답하신 교수님의 유머에 우리 모두는 다함께 즐겁게 웃으며 마지막 잔을 기울였다.
벌써 1년...유명 가수의 노래 제목처럼 우리 모두 코로나19의 일상에서 어느덧 2년차를 맞이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로인해 사적 모임에 대한 제한, 화상회의, 배달음식, 온라인강의 등은 정말 일상이 되어버렸고 내수경기침체, 우울감 증가, 1회용품 사용증가로 인한 환경오염, 정치적 대립 등의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심각하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이 언제쯤 종료될지 걱정하고 염원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것이고 대다수의 캠퍼스의 청춘들 역시도 빨리 젊음의 무대에서 주연 배우로 복귀할 수 있기를 희망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우리 모두 끝이 보이지 않은 이곳에서 함께 벗어날 수 있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라며, 지난 저녁식사 때 교수님의 말씀처럼 내가 일방적인 문자를 받게 되는 것이 언택트의 시대라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무서운 얼굴을 가져서이길 간절히 바래본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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