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는 발걸음 : 움직임 속에 담긴 성장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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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석우재활서비스센터장
얼마 전, 따스한 봄볕이 비추던 날, 지인을 우연히 마주쳤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 건, 손자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아들과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렀다고 했다. 그분의 얼굴에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애틋함이 담겨 있었고, 아이는 품 안에서 세상을 관찰하듯 두리번거렸다.
그 따뜻한 장면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13개월쯤 되었죠?” 그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웃으셨다. “어머, 맞아요! 딱 13개월이에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지금껏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이,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발달 시기를 읽는 감각을 내게 준 것이라고.’
오늘 만난 아이도 잠깐이었지만 선 자세, 보행양상, 상호작용의 양상, 손의 움직임, 몸의 긴장과 이완까지.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아이가 보내는 ‘발달의 언어’였다. 소아 물리치료사로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축적된 이 감각은, 단지 직관이 아닌 관찰과 경험, 기다림의 산물이다.
그날의 짧은 순간의 대화는 나에게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소아물리치료학을 강의하는 이번 학기,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아이의 움직임을 기능적 회복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이만의 리듬과 감정, 발달의 여정이 녹아 있다. 움직임은 단순한 근육의 사용이 아니라, 세상과 처음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며,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진솔한 언어다. 영아가 생애 처음으로 보행을 시도하는 장면은 언제나 경이롭다.
떨리는 다리, 불안정한 중심, 아직 미성숙한 신경계. 그러나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내적 동기와 용기가 깃들어 있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는 반복 속에서 아이는 삶을 배우고, 나는 그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회복탄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발달지연이나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들과의 만남은 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작은 움직임 하나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료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전략을 적용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숫자나 결과가 아니라, 아이의 눈빛에서 나타난다. “나도 할 수 있어요”라는 성취감이 반짝이는 그 순간. 나는 그 장면을 위해 수없이 기다리고, 실패를 경험하며, 다시 다가간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치료자이면서 동시에 배우는 자로 존재한다. 아동의 움직임은 단순히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감각 정보를 통합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의 동작을 해석할 때, 그 속에 담긴 인지‧정서적 성장까지 고려한 통합적 접근을 해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은 관점을 임상 현장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아이의 움직임을 기능으로만 보지 마세요. 그 안에 담긴 감정, 성장의 여정, 그리고 존재의 언어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천천히 움직인다. 하지만 그 느린 리듬 속에는 ‘자기만의 시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속도를 존중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기다림 속에서 진정한 치료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아이와 치료자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그 모든 것 속에 담긴 순수함과 가능성, 그리고 ‘삶을 배우는 언어’. 그들은 내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존재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얼마 전, 따스한 봄볕이 비추던 날, 지인을 우연히 마주쳤다.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온 건, 손자를 품에 안고 조심스럽게 등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아들과 며느리가 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렀다고 했다. 그분의 얼굴에는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애틋함이 담겨 있었고, 아이는 품 안에서 세상을 관찰하듯 두리번거렸다.
그 따뜻한 장면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13개월쯤 되었죠?” 그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웃으셨다. “어머, 맞아요! 딱 13개월이에요. 어떻게 아셨어요?”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지만, 속으로는 생각했다. ‘지금껏 수많은 아이들을 만나온 경험이, 그들의 움직임을 통해 발달 시기를 읽는 감각을 내게 준 것이라고.’
오늘 만난 아이도 잠깐이었지만 선 자세, 보행양상, 상호작용의 양상, 손의 움직임, 몸의 긴장과 이완까지. 그 모든 것은 나에게 아이가 보내는 ‘발달의 언어’였다. 소아 물리치료사로서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하며 축적된 이 감각은, 단지 직관이 아닌 관찰과 경험, 기다림의 산물이다.
그날의 짧은 순간의 대화는 나에게 오래도록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소아물리치료학을 강의하는 이번 학기,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중요한 메시지를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아이의 움직임을 기능적 회복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려 한다. 하지만 그 안에는 아이만의 리듬과 감정, 발달의 여정이 녹아 있다. 움직임은 단순한 근육의 사용이 아니라, 세상과 처음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며,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진솔한 언어다. 영아가 생애 처음으로 보행을 시도하는 장면은 언제나 경이롭다.
떨리는 다리, 불안정한 중심, 아직 미성숙한 신경계. 그러나 그 안에는 세상을 향한 내적 동기와 용기가 깃들어 있다. 넘어지고 또 일어나는 반복 속에서 아이는 삶을 배우고, 나는 그 모습을 통해 인간 본연의 회복탄력성을 마주하게 된다.
특히, 발달지연이나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들과의 만남은 늘 나를 겸손하게 만든다. 작은 움직임 하나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료사는 끊임없이 분석하고 전략을 적용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숫자나 결과가 아니라, 아이의 눈빛에서 나타난다. “나도 할 수 있어요”라는 성취감이 반짝이는 그 순간. 나는 그 장면을 위해 수없이 기다리고, 실패를 경험하며, 다시 다가간다.
이 과정 속에서 나는 치료자이면서 동시에 배우는 자로 존재한다. 아동의 움직임은 단순히 기능의 습득이 아니라, 감각 정보를 통합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의 동작을 해석할 때, 그 속에 담긴 인지‧정서적 성장까지 고려한 통합적 접근을 해야 한다.
나는 이와 같은 관점을 임상 현장뿐만 아니라 교육 현장에서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아이의 움직임을 기능으로만 보지 마세요. 그 안에 담긴 감정, 성장의 여정, 그리고 존재의 언어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천천히 움직인다. 하지만 그 느린 리듬 속에는 ‘자기만의 시간’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속도를 존중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 기다림 속에서 진정한 치료적 관계가 형성되고, 그것이 아이와 치료자 모두에게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의 움직임을 기다린다. 그 모든 것 속에 담긴 순수함과 가능성, 그리고 ‘삶을 배우는 언어’. 그들은 내게, 우리 모두에게, 지금 이 순간을 더 깊이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존재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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