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의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가 : 발달재활서비스 자격 기준의 재설계를 촉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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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석우재활서비스센터장
발달재활서비스는 장애아동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핵심 국가복지제도다. 운동, 언어, 감각, 정서 전반에 걸친 다학제적 중재를 통해 아동과 가족의 기능적 참여를 증진시키는 이 제도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현재의 발달재활서비스 제공인력 자격 기준은 이러한 제도의 본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운동발달재활 영역에서는 제도적 불균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행 제도는 제공인력 자격 기준으로 관련 교과목 14과목(42학점) 또는 대학원 21학점 이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일정 수준의 이론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임상 중재 능력이나 현장성, 전문성을 반영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일부 대학에서 ‘자격 취득용 커리큘럼’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대학은 유사학과를 신설해 학생을 모집하고, 실습보다는 강의 위주의 형식적 이론 수업만을 제공함으로써 자격제도의 본래 목적과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 결국 일부 대학이 유사학과를 신설해 속된말로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즉, 자격이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채, 대학의 입학 전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물리치료학과는 국가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법적으로 6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실습은 단순 참관이 아니라, 환자 평가, 치료계획 수립, 보호자 상담, 다학제 협업 등 실질적인 치료 참여를 포함한다. 이는 학제일원화 과정을 통해서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모두 해당되며, 교육과정도 모두 4년의 과정으로 일치된 교육을 하게 된다.
소아물리치료 영역은 발달단계별 아동의 운동 특성을 이해하고, 근거 기반 중재를 설계해야 하므로 높은 임상 판단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고난이도 분야다. 이처럼 국가가 면허와 실습을 통해 전문성을 검증한 인력조차도 발달재활서비스 제공인력으로 자동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명백한 역차별이며, 제도 설계상의 불합리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불어 현행 발달재활서비스 운동재활 제공인력의 실습 기준은 40시간 이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실습기관의 인증이나 실습지도자의 자격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수 시간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질적 평가 기준도 부재한 상황에서 단지 ‘이수 여부’만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서비스 질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과연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발달재활서비스는 제도의 완결성이나 행정적 효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서비스는 오로지 장애아동과 그 가족을 위한 제도이며, 그들이 하루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국가의 약속이다. 그런데 지금의 자격 기준은 그 목적과 맞닿아 있는가? 실제로 아이와 하루 종일 호흡하고, 눈빛을 읽고, 무릎을 꿇고 마주하며, 자세를 조정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단지 학점을 이수한 이론적 교육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넘어지는 아이의 균형을 이해하고, 걷지 못하던 아이의 첫 발걸음을 이끌 수 있을까? 보호자가 흘리는 눈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600시간의 임상 실습과 국가 면허를 거쳐 나온 전문 치료사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의 삶 속에서 신뢰와 실전 감각을 체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그들을 교과목을 더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격 밖으로 밀어낸다. 반면, 실제 임상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단지 학점을 이수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는 단순한 자격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에게, 부모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국가는 약속해야 한다. 아동과 보호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공정하게 선별하는 기준을.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체계를. ‘누가 이 자격을 따야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우리 아이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인가’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제도를 만들고 있는가?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은 명확하다. 첫째,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등 면허 소지자에게 간소화된 자격 인정 트랙을 제공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소아 임상경력이나 실습을 충족한 경우 자격을 자동 인정하거나 간소화된 심사를 거치게 해야 한다.
둘째, 실습 기준을 100시간 이상으로 확대하고, 실습기관 인증제와 지도자 자격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 실습지도 교수는 임상 경험과 소아재활 교육경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며, 기관은 최소 요건을 충족해야 실습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자격 단계별 분류와 역할 차등을 통해 면허자와 비면허자의 중재 범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단순 교과 이수자, 면허 보유자, 면허+경력 보유자 간 역할을 분리하여 서비스 질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넷째, 자격시험 제도와 포트폴리오 기반 심사를 병행해 실무 역량 중심의 자격 부여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해외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물리치료사(PT) 자격 취득은 박사과정(DPT)을 이수한 후 국가자격시험(NPTE) 통과와 최소 10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을 요구하며, 이후 주기적 보수교육과 면허 갱신이 필요하다. 캐나다 역시 공인 물리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임상능력시험(Clinical Component) 통과를 조건으로 하며, 지속적 연수교육을 통해 실무 능력을 유지한다. 영국은 HCPC 산하에서 임상 기반 교육과 실습 이수 여부를 면허 등록 요건으로 규정하며, 각 인력은 정기적 갱신 심사를 통해 자격을 유지한다. 이들 국가는 자격을 지식과 실습, 임상 능력,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총합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발달재활서비스는 단지 ‘자격 있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 있는 사람’이 아동과 가족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신뢰의 서비스다. 우리는 더 이상 형식적 기준에 안주할 수 없다. 이제는 실질적 전문성, 공정한 평가, 수혜자 중심의 자격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을 때,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 중요한 질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이 질문이 곧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누가, 아이의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가?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발달재활서비스는 장애아동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핵심 국가복지제도다. 운동, 언어, 감각, 정서 전반에 걸친 다학제적 중재를 통해 아동과 가족의 기능적 참여를 증진시키는 이 제도는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 삶의 질을 지탱하는 기반이다. 그러나 현재의 발달재활서비스 제공인력 자격 기준은 이러한 제도의 본질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운동발달재활 영역에서는 제도적 불균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행 제도는 제공인력 자격 기준으로 관련 교과목 14과목(42학점) 또는 대학원 21학점 이수를 요구하고 있다. 이는 일정 수준의 이론적 기반을 형성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지만, 실제 임상 중재 능력이나 현장성, 전문성을 반영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더더욱 큰 문제는 이 제도가 일부 대학에서 ‘자격 취득용 커리큘럼’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대학은 유사학과를 신설해 학생을 모집하고, 실습보다는 강의 위주의 형식적 이론 수업만을 제공함으로써 자격제도의 본래 목적과 신뢰성을 훼손하고 있다. 결국 일부 대학이 유사학과를 신설해 속된말로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인 것이다. 즉, 자격이 교육의 질을 담보하지 못한 채, 대학의 입학 전략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물리치료학과는 국가고시에 응시하기 위해 법적으로 6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을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이 실습은 단순 참관이 아니라, 환자 평가, 치료계획 수립, 보호자 상담, 다학제 협업 등 실질적인 치료 참여를 포함한다. 이는 학제일원화 과정을 통해서 전문대학, 4년제 대학 모두 해당되며, 교육과정도 모두 4년의 과정으로 일치된 교육을 하게 된다.
소아물리치료 영역은 발달단계별 아동의 운동 특성을 이해하고, 근거 기반 중재를 설계해야 하므로 높은 임상 판단력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고난이도 분야다. 이처럼 국가가 면허와 실습을 통해 전문성을 검증한 인력조차도 발달재활서비스 제공인력으로 자동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명백한 역차별이며, 제도 설계상의 불합리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불어 현행 발달재활서비스 운동재활 제공인력의 실습 기준은 40시간 이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며, 실습기관의 인증이나 실습지도자의 자격 기준도 명확히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수 시간 자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질적 평가 기준도 부재한 상황에서 단지 ‘이수 여부’만으로 자격을 부여하는 것은 서비스 질 저하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되물어야 한다. 과연 이 제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발달재활서비스는 제도의 완결성이나 행정적 효율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서비스는 오로지 장애아동과 그 가족을 위한 제도이며, 그들이 하루라도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국가의 약속이다. 그런데 지금의 자격 기준은 그 목적과 맞닿아 있는가? 실제로 아이와 하루 종일 호흡하고, 눈빛을 읽고, 무릎을 꿇고 마주하며, 자세를 조정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단지 학점을 이수한 이론적 교육만으로 하루에도 수십 번 넘어지는 아이의 균형을 이해하고, 걷지 못하던 아이의 첫 발걸음을 이끌 수 있을까? 보호자가 흘리는 눈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600시간의 임상 실습과 국가 면허를 거쳐 나온 전문 치료사들, 이들은 단순히 지식을 배운 것이 아니라, 수많은 환자와 보호자의 삶 속에서 신뢰와 실전 감각을 체화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그들을 교과목을 더 이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격 밖으로 밀어낸다. 반면, 실제 임상 경험이 전혀 없는 이가 단지 학점을 이수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자격을 부여받는다. 이는 단순한 자격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에게, 부모에게, 그리고 우리 사회의 신뢰에 대한 배신이다.
국가는 약속해야 한다. 아동과 보호자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공정하게 선별하는 기준을.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자격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체계를. ‘누가 이 자격을 따야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누가 우리 아이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인가’이다.
이 질문 앞에서 우리는 어떤 제도를 만들고 있는가?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은 명확하다. 첫째, 물리치료사·작업치료사 등 면허 소지자에게 간소화된 자격 인정 트랙을 제공해야 한다. 일정 수준의 소아 임상경력이나 실습을 충족한 경우 자격을 자동 인정하거나 간소화된 심사를 거치게 해야 한다.
둘째, 실습 기준을 100시간 이상으로 확대하고, 실습기관 인증제와 지도자 자격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 실습지도 교수는 임상 경험과 소아재활 교육경력을 반드시 갖추어야 하며, 기관은 최소 요건을 충족해야 실습 교육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자격 단계별 분류와 역할 차등을 통해 면허자와 비면허자의 중재 범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단순 교과 이수자, 면허 보유자, 면허+경력 보유자 간 역할을 분리하여 서비스 질과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넷째, 자격시험 제도와 포트폴리오 기반 심사를 병행해 실무 역량 중심의 자격 부여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해외 사례는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물리치료사(PT) 자격 취득은 박사과정(DPT)을 이수한 후 국가자격시험(NPTE) 통과와 최소 1000시간 이상의 임상 실습을 요구하며, 이후 주기적 보수교육과 면허 갱신이 필요하다. 캐나다 역시 공인 물리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임상능력시험(Clinical Component) 통과를 조건으로 하며, 지속적 연수교육을 통해 실무 능력을 유지한다. 영국은 HCPC 산하에서 임상 기반 교육과 실습 이수 여부를 면허 등록 요건으로 규정하며, 각 인력은 정기적 갱신 심사를 통해 자격을 유지한다. 이들 국가는 자격을 지식과 실습, 임상 능력, 그리고 사회적 책임의 총합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발달재활서비스는 단지 ‘자격 있는 사람’이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역량 있는 사람’이 아동과 가족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신뢰의 서비스다. 우리는 더 이상 형식적 기준에 안주할 수 없다. 이제는 실질적 전문성, 공정한 평가, 수혜자 중심의 자격체계가 자리 잡아야 한다. 지금까지 필자가 언급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았을 때,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법을 바꾸고 제도를 개선해야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 중요한 질문 앞에서,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이 질문이 곧 새로운 기준이 되어야 한다. 누가, 아이의 손을 잡을 자격이 있는가?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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