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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현충일 그리고 우리 지역의 민족 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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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02회 작성일 24-01-11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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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석우재활서비스센터장

역사적으로 국가가 존재하는 데 상당한 전란을 거치게 되어있다. 이 때문에 모든 국가는 숭고한 전란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칼럼 원고를 위해 마침 글을 쓰고 있는 오늘은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이들의 충성을 기념하는 날인 현충일이다.

1956년 4월 현충기념일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 대다수가 현충일로만 알고 있을 6월 6일은 또 다른 기념일이기도 한데, 바로 청주대학교의 개교기념일이다. 현충일 기념보다 10년 앞선 1947년 6월 6일 광복 이후 최초의 4년제 대학으로 개교한 청주대학교는 1951년까지 청주상과대학이라는 교명으로 불린 우리 지역의 명문사학인 청주대학교의 역사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청주대학교의 뿌리는 일제 강점기였던 1924년 4월 민족 교육 선각자인 청암 김원근⋅석정 김영근 선생의 교육구국(敎育救國) 정신으로 설립한 대성 보통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청암⋅석정 형제는 주권을 상실하고 민족이 핍박을 받던 일제 강점기에 자연스럽게 육영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1919년 3⋅1운동 이후 ‘무력으로 독립을 찾기는 어렵다.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배워서 힘을 길러야겠다’라고 마음을 굳힌 청암은 1922년 학교설립이 좌절된 조치원을 벗어나 육영 사업을 펼칠 지역으로 청주를 정해 거주지를 옮겼다.

당시 청주의 교육 환경은 여러 곳에 사립학교가 개설되어 개화사상과 신교육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매우 열악해 전통적인 서당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1930년대 들어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면서 청암과 석정은 상업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국민에게 상업교육을 통해 육영자본 형성 능력을 기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한 두 형제는 1934년 청주에 상업학교를 설립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당시 가격으로 20만 원 상당의 연 추수 1,200석의 농지와 현금 5만 원 등 총 25만 원을 기본 자산으로 상업학교설치기성회를 발족했다. 이후 결코 한 시도 순탄치 않은 사립학교 설립과정을 거치면서 청암이 논밭, 대지, 임야 등 52만 6,310평을 석정이 논밭 13만 1,834평을 기부하고 550만 원으로 기성회를 조직했다.

또한 청주상과대학 설립기성회가 현금 200만 원을 기부할 것을 약정하였다. 해방 전 1940년대 1원의 가치가 현재 물가의 14,285배라는 조사결과를 토대로 계산해 본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희사(喜捨)라고 할 수 있겠다. 아니 모두 바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실학성세(實學成世)! ‘실용학문을 바탕으로 성숙한 문화 세계를 창조하자’라는 뜻으로 청주대학교의 교육이념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청주의 역사 속에서 청주대학교의 존재는 우리의 고장 청주에 ‘교육의 도시’라는 별칭을 갖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졸업생은 12만 명을 향해가고 있다. 2016년에는 미국의 과학 저널 네이처(Nature)가 발표한 ‘2016 네이처 인덱스 교육기관 순위(2016 Nature Index-Academic)’ 평가 가운데 한국 대학별 연구경쟁력 점수에서 청주대학교가 충청권 사립대학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방사립대학의 위기가 현실로 다가온 현시점에서 우리 지역의 명문 민족 사학으로서의 역사적 발자취는 정말로 큰 의미가 있다. 필자 역시 청주대학교의 구성원으로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청주대학교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며,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가 청주대학교의 힘찬 발걸음을 응원해 주시길 바라본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