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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온도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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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0회 작성일 25-06-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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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김창주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교수·석우재활서비스센터장

6월 2일, 대통령 선거로 분주한 대한민국은 또 한 명의 대통령을 선택했다.

뉴스와 거리 곳곳엔 후보들의 이름과하지만 이 질문은 정치에만 머무르 공약이 넘쳐나고, 우리는 또 한 번 ‘누가 이 나라를 이끌 적임자인가’를 고민한다. 늘 그렇듯 공약의 화려함보다는 사람의 진정성이, 이미지보다는 태도와 말의 무게가 마음을 끌곤 한다. 그렇기에 선거는 늘 질문을 던진다. “과연 누가 이 나라를 책임질 사람인가?”

필자는 이런 시기에 종종 ‘지도자’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정치 지도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삶 곳곳에는 저마다의 지도자가 존재한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병원에서는 치료사가, 가정에서는 부모가 한 사람의 삶을 이끌고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나 역시 ‘교수’라는 이름으로 작은 변화를 소망하며, 누군가의 삶에 조용한 나침반이 되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음을 자주 인지하곤 한다.

대학 대부분의 6월이 그러하겠지만, 우리 물리치료학과의 6월은 유난히 분주하다. 학생들은 한 학기를 정리하며 기말고사에 집중하고, 특히 3학년 학생들은 남들보다 조금 이른 현실과 마주할 준비를 한다. ‘방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여유와는 다르게, 그들은 임상 실습이라는 낯설고도 치열한 현장으로 나아간다.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실제 환자 앞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몸으로 익히고 마음으로 부딪히며 성장하는 시간이다.

나는 그들이 강의실을 나서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기대와 긴장, 그리고 조용한 책임감을 읽는다. 한 학기를 마치고 우리는 무언가를 ‘끝낸다’고 말하지만, 그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다. 그들의 표정은 말보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해방감, 아쉬움,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책임감까지도.’

이번 학기에도 나는 강의계획서에 따라 강의하고, 과제를 내고, 학생들은 발표와 시험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누군가는 A+, 누군가는 C를 받았고, 성적표는 그렇게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점수인가, 기억인가, 아니면 관계인가?” 교육은 이중적이다. 가르치는 동시에 배워야 하고, 지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존재를 마주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완성된 지도자’가 아니라, 학생과 함께 성장하고 있는 불완전한 동반자라 여긴다.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있다. 이론은 다소 약했지만 실습에서 누구보다 환자를 따뜻하게 대했던 학생. 그 친구는 높은 학점을 받진 못했지만, 이미 치료사로서 가장 중요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높은 점수를 줄 수 없었지만, 그를 통해 진짜 치료사의 태도란 무엇인가를 되묻고, 또 배우게 되었다.

또 다른 학생은 조용하고 말수가 적었다. 발표를 시키면 늘 긴장했고, 질문에 대한 반응도 느렸다. 하지만 실습 일지에는 매일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변화를 섬세하게 기록해두었고, 지도 치료사로부터 “아이 눈높이에 맞춘 소통이 탁월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 학생은 말보다 행동으로, 이론보다 관계로 자신의 진심을 증명해냈다.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말한다. “조금이라도 준비하고 노력한게 있다면 그냥 한번 해봐요. 틀릴 수도 있죠. 잘못할 수도 있죠. 괜찮아요. 나는 여러분이 ‘시도하고 경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해요”

교육은 관계의 예술이다. 시험 점수는 잊힐 수 있지만, 한 사람의 진심 어린 격려와 기다림은 오래 남는다. 그렇기에 나는 강의실을 향할 때마다 늘 같은 다짐을 되뇌이곤 한다. 많은 것을 가르치기보다, 더 따뜻하게 마주보는 사람이 되겠다고. 대선을 보며 지도자의 자질을 논하는 지금, 우리 각자가 누군가의 삶에 어떤 영향력을 주고 있는지를 함께 돌아보면 좋겠다.

리더쉽은 직책이 아니라 태도에서 시작되며, 교육은 결과보다 관계의 깊이에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한 학기가 끝나고 남는 것은 성적표가 아니다. 함께 웃고, 고민하고, 성장했던 기억의 온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적이 아닌 사람을, 평가가 아닌 관계를 남기는 교육을 꿈꾼다.

청주대학교 물리치료학과 3학년 여러분, 한 학기 동안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실습 현장에서도 여러분의 따뜻한 마음과 배운 것들이 잘 어우러지길 바랍니다. 모두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출처 : 충청일보(https://www.ccdailynews.com)